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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내년엔 중농까지

개웅산 2017. 10. 22. 06:11

우리집 주말농장은 최순실, 안종범과 정호성이 묵고 있는 남부구치소에서 그리 멀지 않다. 원래 집사람의 초등학교 남자동창이 대규모 주말 농장부지를 확보했는데, 그 중에서 30여평을 빌려 농사를 짓고 있다. 말이 30평이지 주말농장 치고는 엄청 넓은 규모이다. 우리는 이곳에 온갖 것을 심었다. 상추, 배추, , 감자, 고추, 땅콩, , 가지, 토마토, , 당근, 미나리, 호박, , 옥수수, 피마자, 당노에 좋다는 약콘, 여주에 이르기까지.

 

땅이 거칠고 메말라 조금만 방심해도 풀만 웃자라고, 작물은 말라 비틀어지기 일쑤다. 콩은 멀쑥이 키는 자라 허리춤까지 올라왔지만 가지를 처주지 않아 콩이 잘 열리지 않았다. 나중에 듷으니 웃대가리를 사정없이 처주어야만 열매가 맺힌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며칠 전 고무마를 수확했다. 고구마가 시장에 나오는 것처럼 미끈하게 통통하게 왜무우처럼 생긴게 아니라 알타리 무도 아니고 팽이를 확대해 놓은 것처럼 한 두 개만 컷지 크기가 고르질 못했다. 물을 안주어서 생긴 거라고 한다. 그런데 땅이 얼마나 단단한지 금새 손에 물집이 잡혔다. 세두렁을 해 전 안에 캐서 거두리라는 욕심에 무리를 했던 것이다. 오랜만에 쇠스랑을 휘둘러댔더니 삭신이 모두 욱신거린다. 밭두렁의 풀도 눈에 거슬려 손을 대자니 여간 힘든게 아니다. 어느 것 하나 손을 필요로 하지 않는게 없다.

 

고추는 처음에는 유기농 무농약으로 하자 해서 덤볐는데 장마에 비오고 나더니 고추가 병들어 썩어나가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농약을 쳤다. 농약을 설명서에 있는 대로 물을 배율에 따라 부었다. 몇 번을 꼼꼼이 뿌려댔다. 그리고 얼마가 지나 다시 찾으니 고추가 완전히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농약을 너무 뿌린 것이다. 결국 이파리와 푸른 고추 몇 개만 먹고 모두 망쳤다. 토마도도 농약의 피해자가 되어 줄기만 앙상하게 뻣어나간 채 한여름의 땀흘림을 헛수고로 만들었다.

 

그래도 제대로 된 것은 가지, 호박, 파 뿐이었다. 이것은 우리가 열심히 가꾼 보람이 아니라 식물의 끈질긴 생명력 때문이다. 호박은 어떠한 지형이든, 주변에 어떠한 식물 군상이 운집해 있든 무적의 팔을 뻣어나간다. 나무든, 풀밭이든, 인정사정 없이 내처나간다. 야콘도 대와 잎이 해바라기 자라듯 무럭무럭 커나가더니 이것도 적당하게 옆가지를 처주지 않아 뿌리가 제대로 들지 않았다.

 

황금빛 가을 주말을 두 번이나 고스란히 주말농장에 바쳤다. 거둘 땐 빈약해 실망스러웠던 것들이 집안 베란다에 풀어놓으니 그래도 풍성했다, 땅콩만 다 먹을려도 몇 달은 걸릴 거 같고, 고구마는 이러저리 나누어 주어야 썩지 않을 것이다. 야콘에 마까지 손에 물집까지 잡혀가며 일한 보람이 있었나 보다. 그래도 내년에는 인터넷을 뒤져 재배방법을 좀 살펴본 후 덤벼야 하겠다.  땅은 땀흘린 만큼 되돌려준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면서도 항상 요행 수를 바랐던 것은 아닌지, 한 귀로 흘려들은 누군가의 얘기가 문뜩 생각난다.

 

  - 곡식은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자란다.

  - 하농은 풀을 가꾸고, 중농은 작물을 가꾸며, 상농은 흙을 가꾼다.

 

내년엔 상농은 아니더라도 중농까지는 기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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