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차례 정종량 벌써 2018년의 원단이다. 구정에는 원래 떡국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지만 우리집은 기제사처럼 온갖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일 년 열두 달 그때 그때 찾아서 일일이 모실 수 없기 때문에 구정을 통해 한번에 드린다. 이것은 어머니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연로하신 어머니는 온갖 질병을 다 갖고 하루하루를 버티신다. 어머니 말로는 조상님 귀신들이 달라붙어 도무지 떨어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게모르게 굿도 수 차례 했다 바로 밑에 동생이 미신이라고 완강하게 반대하니까 그 밑에 동생에게 부탁해서 결국 외지에서 치뤘다. 그 때는 어머니 고통이 조금 완화되는 효과가 있었다는데 또 다시 조상님 귀신이 달라붙는다고 하신다. 이러한 연고로 우리집의 제사는 결코 소홀히 할 수가..
어머니, 이젠 우리 엄마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벌써 구십하고도 셋이다. 어지간하면 요양원에 들어가실 연세이지만 우리 어머니는 아직은 정신적으로는 멀쩡 하시다. 지난번 박근혜 전대통령의 탄핵 의결 때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2 이상 의결 즉 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는 걸 알려드렸는데 정확하게 기억하셨다. 그 후 헌재에서 역시 3분의 2 이상인 6명의 재판관이 찬성해야 한다고 알려드렸는데 모두 기억하셨다. 사실 동생들도 건성으로 알아서 젊은 애들도 잘 모른다. 그런데 어머니는 기억력 만큼은 쇠퇴하질 않으셨다. 그뿐 아니다. 집안 냉장고에 들어있는 먹거리 뿐만 아니라 부엌에 있는 세간도 빠짐없이 모두 외우신다. 물론 허리가 휘어 지팡이를 짚으신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무릎 관절이 아프고 발이 ..
남미의 대표작가이자 노벨상 수상작가인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샤 마르께스의 작품, 단편 한 편을 올립니다. '백년의 고독'으로 널리 알려진 그의 작품 세계로 몰입해 보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익사체 가브리엘 G 마르께스 바다에서 밀려오는 거무스름하고 은밀한 형체를 처음 본 아이들은 그것이 적의 군함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깃발도, 돛대도 보이지 않자 고래인가 보다고 추측했다. 드디어 그 물체가 해변으로 밀려 올라왔을 때 아이들은 해초 뭉치들과 해파리의 촉수들, 물고기와 표류물의 잔해들을 걷어냈고, 그제야 그것이 익사체임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시체를 갖고 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오후 내내 시체를 모래에 파묻고 다시 파헤치고 하면서 논 뒤에야 어른 한 사람이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하..
[2017 신춘문예] 래빗 쇼 - 이상희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꼬르따사르는 벌써 한 달째 토끼를 토하지 않았다. 임신부처럼 불룩 튀어나온 뱃속에는 네다섯 마리의 토끼가 뒤엉켜 있었다. 그는 토끼를 토하지 않으면서부터 클로버 잎사귀만 먹었다. 앙상하게 마른 몸을 둥글게 말고 죽은 듯이 누워 있다가 이따금 입술을 오물거렸다. 나는 베갯머리에 떨어져 있는 클로버 잎을 주워 들고, 꼬르따사르의 뱃가죽이 우둘투둘 일렁이는 것을 쳐다보았다. “토끼는?” 재오가 물었다. 어제도 잠을 못 잤는지 얼굴이 까칠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재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꼬르따사르에게 다가가 배를 눌렀다. 어떻게 해서든 토끼를 토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꼬르따사르는 이를 악물고 악착같이 토끼를 토하지 않으려고 ..
10여년 전에 읽었던 최인철 교수의 'Frame'을 다시 한번 읽었다. 당시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많은 지혜로움이 담겨있음을 깨달았다. 물론 삶에 직접적으로 큰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살다보면 직장이나 가정문제로 당혹해 하거나 다양한 선택의 순간에 봉착할 수 있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인지, 이 책은 그 길라잡이의 역할을 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소슬한 가을밤을 위한 한 권의 책 정종량 (최인철 지음, 21세기북스 출판, 2007) 10여년 전 직장 선배 한 분이 고위직공무원 연수를 다녀와서 최인철 교수의 ‘프레임’이라는 책을 추천했다. 그는 지금까지 들어온 교양강좌 중 가장 감동적인 최고의 명강의였다고 했다. 덧붙여 그는 최인철 교수와는 미국 유학 동문임을 강조하였다. 저자인..
www.paecon.net Post-Autistic Economics Review Kicking Away the Ladder: How the Economic and Intellectual Histories of Capitalism Have Been Re-Written to Justify Neo-Liberal Capitalism Ha-Joon Chang (Cambridge University, UK) There is currently great pressure on developing countries to adopt a set of good policies and good institutions such as liberalisation of trade and investment and strong pat..
리지린 / 윤내현 韓中日近現代史/人物 고조선은 한반도와 만주를 아우른 우리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진 국가였다. 1980년대 초 윤내현 교수의 주장은 사학계의 통설을 뒤엎으며 끝내 국사교과서를 수정하게 만들었다. 정년을 앞둔 노학자로부터 한국 고대사 연구 30년을 듣는다. 윤내현 교수는 1939년 전남 해남 출생으로 단국대 사학과,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했다. 평소 윤내현 교수(64·단국대 대학원장·동양사)는 말을 아끼고 몸을 낮추는 스타일이다. 30년 가까이 한국 고대사에 매달리면서 ‘비정통 역사학자’ ‘국수주의자’ ‘과도한 민족주의자’ 심지어 ‘북한 추종자’라는 비난을 감수해야 했기에 자연스레 몸에 밴 조심성이리라 짐작된다. 그런 윤교수가 요즘 부쩍 말수가 늘고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정년..
설 이야기 속으로 지난 설에는 집사람과 단 둘이서만 시골을 찾았다. 아들 녀석은 토익 준비한다고 함께 하질 못했다. 올 때는 설 다음날 이른 새벽에 출발했다. 집 사람이 옆에서 내가 졸릴까봐 이 얘기 저 얘기 들려줬다. 그 중 재밌는 몇 가지를 얘기를 공유한다. 1. 집사람의 친구 시숙이 광주에 사시는데 연세가 70이 다 되었다고 한다. 일 때문에 설날 이른 아침, 부인과 함께 차를 몰고 전주로 오다가 정읍 휴게소에 잠깐 들렸다고 한다. 휴식을 마친 아저씨는 뒷좌석에 부인이 탄 줄 알고 다시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인은 휴게소에서 나와 주차장에 차를 찾으니 없어졌더란다. 그래서 주변을 아무리 찾아도 차가 없길래 남편이 모르고 떠난 줄 알고 너무 황당해서 주변에 사람들에게 휴대폰을 좀 빌리려했지만..
행복이 깃드는 나라를 찾아서 정종량 “사실 이 배는 사람을 태울 수 없는 배요. 보시다시피 곡물 벌크선이죠. 화물선이란 말입니다. 정부의 특별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당신들을 실었지만 법적으로 당신들은 화물이죠.”(133쪽) 마치 세월호 선박의 비극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듯하여, 갑자기 배에 탄 섬사람들의 운명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천신만고 끝에 화산재로 뒤덮인 무인도에 도착한 이들의 행복은 과연 이루어질까?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의 작가 한창훈은 남쪽 먼 바다에서 태어나 20여년 넘게 전업작가 생활을 해오면서 소설, 산문, 어린이책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들을 써왔다. 이로 인해 한겨레문학상, 허균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그는 특유의 소신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어야지 꿀을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