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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족

설 이야기 속으로

개웅산 2017. 10. 13. 20:48

설 이야기 속으로

지난 설에는 집사람과 단 둘이서만 시골을 찾았다. 아들 녀석은 토익 준비한다고 함께 하질 못했다. 올 때는 설 다음날 이른 새벽에 출발했다. 집 사람이 옆에서 내가 졸릴까봐 이 얘기 저 얘기 들려줬다. 그 중 재밌는 몇 가지를 얘기를 공유한다.

1. 집사람의 친구 시숙이 광주에 사시는데 연세가 70이 다 되었다고 한다. 일 때문에 설날 이른 아침, 부인과 함께 차를 몰고 전주로 오다가 정읍 휴게소에 잠깐 들렸다고 한다. 휴식을 마친 아저씨는 뒷좌석에 부인이 탄 줄 알고 다시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부인은 휴게소에서 나와 주차장에 차를 찾으니 없어졌더란다. 그래서 주변을 아무리 찾아도 차가 없길래 남편이 모르고 떠난 줄 알고 너무 황당해서 주변에 사람들에게 휴대폰을 좀 빌리려했지만 이른 아침에 나이많은 아줌마를 이상하게 보고 아무도 휴대폰을 빌려주질 않더란다. 할 수 없이 가계에 들어가 주인 여자에게 딱한 사정을 설명하고 휴대폰을 좀 쓰자고 했더니 역시 빌려주질 않았는데, 마침 옆에 있던 남편이 딱하게 여기고 휴대폰을 빌려주어 먼저 간 남편에게 전화를 하니 남편은 운전 중이라 전화를 받으라고 휴대폰을 뒷자석의 부인에게 건네려해도 반응이 없어 뒤를 돌아보니 그제서야 부인이 타지않을 것을 알아차렸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부인의 상의가 의자에 세워져 있어 얼핏보니 사람이 탄 것처럼 보였다나. 역시 황당한 남편은 김제휴게소에서 부인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편 부인은 정읍에서 김제까지 가야되는데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해 하자 가계 남자주인이 차를 가지고 와서 타라고 하더니 김제휴게소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톨게이트 비용도 본인이 부담하면서 정말 낯선 아줌마에게 이른 아침부터 친절을 배푼 것이다. 김제에서 남편을 만난 후 한바탕 퍼붓고, 그 남자에게 사례금을 주려고 하니까 받질 않아서 주소와 전화번호만 받아놨는데 나중에 광주로 돌아가면 사과라도 한상자 보내려고 했다면서 나도 나이가 나이니만큼 매사에 깜빡하는 것 조심하라는 것이다. 맞아 어떤 땐 방향감각이 둔해질 때도 있지.

2. 동창의 동서들 이야기

동창의 작은 동서는 오십대 후반으로 남편은 농고를 졸업하고 대구에서 농어촌개발공사에 다니며 괜찮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도 잘 커주어서 큰애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고 둘째 애는 취직시험을 보고자 공부 중이고 막내 아들은 제대하고 복학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어찌보면 극히 평범한 가정일지도 모른다. 동서는 지금까지 직장생활도 안하고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만 해왔단다. 문제는 동서라는 여자가 시댁식구들 모임에만 오면 동서들에게 남편 흉을 보고 결혼을 잘 못했느니, 아이들 머리는 좋은데 남편이 잘 못해서 재능을 살리지 못했느니 하는데 자기는 전혀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남편 탓으로만 돌리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말투가 더욱 거칠어지고 시댁의 어른이나 다른 동서들은 안전에도 없고 막말을 해대더라는 것이다. 보다 못한 친구가 동서에게 작심하고 왜 모든 탓을 남편에게만 돌리느냐, 결혼을 잘 못했다면 선택의 책임은 동서에게도 있는 것 아니냐, 그리고 왜 남들 있는데 자꾸 막말이냐, 그런 막말이 결국 누구에게 돌아가는 줄 아느냐 하면서 한바탕 퍼부어 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설 이브 저녁에 말도 없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더니 설날 아침에 본인은 물론 애들까지 못가게 해서 설날 제사에 불참했다나! 명절이 서로가 모여 그리웠던 얼굴들도 모고 살아온 얘기들을 오순도순 나누는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욕심, 욕심을 내려놓으면 가능하련만!!!!

3. 다문화 가정 이야기

집 사람의 친정집은 익산 왕궁이다. 삼례에서 멀지않은데 지금은 많이 변했다. 이번 설에도 친정집과 작은집들을 잠깐 들려 오더니 재밌는 얘기들을 한아름 안아왔다. 그 중 앞집 얘기가 흥미있어 좀 풀어놓겠다. 앞집 어른들은 이미 돌아가셨고, 딸은 이미 출가해서 서울에 살고 있고, 두 아들 중 큰 아들은 유산으로 논밭을 받아 재산이 상당했는데 이 사업 저 사업 하다가 다 말아먹고 급기야는 부인마저 남편을 버렸단다. 애 둘을 가까스로 교육시켰는데 그리 잘 되진 않은 모양이다. 현재는 트럭 운전으로 입에 거미줄 치는 것만 면하는 정도라고 한다. 작은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지키며 노동일이며, 경비일이며 닥치는대로 이일 저일을 해왔는데 그러다 혼기를 놓쳐 사십을 훌쩍 넘겨 사실상 장가가 힘들게 되었단다. 어찌어찌 해서 중국여자를 소개받아 결혼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중국여자가 사람은 괜찮아 보이는데 중국에 하나 아들이 있어서 한창 대학공부를 하는 중이라나. 작은 아들은 이 여자가 그래도 마음에 들어서 결혼을 했는데 중국여자도 이곳에서 취직을 해서 함께 일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가 버는 돈은 모두 중국의 아들에게 송금을 하고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방에 있는 중국인 친구들과도 자주 모임을 갖으면서 우리 생활에 익숙해 있다나. 그런데 문제는 결혼하고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이를 가질 생각을 않고 그냥 지낸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자기가 버는 돈은 모두 중국으로 보내버리고. 이렇게 되니까 작은 아들을 제외한 다른 식구들이 이 중국며느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혹시 한국에서 돈벌어서 한목 챙기고 또 중국의 아들이 대학 졸업 후 취직하면 다시 중국으로 날르는 것 아니냐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작은 아들은 자기 부인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했단다. 더구나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났는데도 한국음식을 제대로 할 줄 몰라 부모님 제사상을 건너 작은 집에서 차린다고 한다. 우리의 피폐화된 농촌현실과 젊은이들의 문제, 다문화시대의 다양한 모습들이 뒤섞여 정초 새벽 가슴을 저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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