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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가족

마지막 차례

개웅산 2018. 2. 22. 18:33

마지막 차례

정종량

 

벌써 2018년의 원단이다.

구정에는 원래 떡국을 만들어 차례를 지내지만 우리집은 기제사처럼 온갖 음식을 만들어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일 년 열두 달 그때 그때 찾아서 일일이 모실 수 없기 때문에 구정을 통해 한번에 드린다. 이것은 어머니의 제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연로하신 어머니는 온갖 질병을 다 갖고 하루하루를 버티신다. 어머니 말로는 조상님 귀신들이 달라붙어 도무지 떨어지질 않는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알게모르게 굿도 수 차례 했다 바로 밑에 동생이 미신이라고 완강하게 반대하니까 그 밑에 동생에게 부탁해서 결국 외지에서 치뤘다. 그 때는 어머니 고통이 조금 완화되는 효과가 있었다는데 또 다시 조상님 귀신이 달라붙는다고 하신다. 이러한 연고로 우리집의 제사는 결코 소홀히 할 수가 없다.

문제는 집이 3월이면 헐리게 된다. 35사단 부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그 앞으로 4차선 도로가 나는 것이다. 우리집 방향의 땅도 일부 수용된다. 따라서 불가피하게 집이 헐리게 생겼다. 어쩌면 60년 이상을 살아온 이곳에서 마지막 조상 섬김의 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다녀와서 형제들 그리고 조카들이 모여 얘기하다 보니 저녁, 모두가 다시 뿔뿔이 흩어졌다. 어제와 같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머니와 나 단 둘이 앉게되자, 어머니의 기나긴 한풀이가 시작되었다. 1944년 가난한 집으로 시집와서 74년째 살고 계신다. 다행히 아직 치매는 들지 않으셨지만 치매 초기의 남 의심병은 가지고 계신다. 어머니는 어릴적 친정에서의 성장과정을 입이 마르게 가슴을 치며 말씀하셨다. 막내로 태어나서 두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그 때 어머니의 엄마 나이가 35살이었다. 다행히 집안이 괜찮아서 유복하게 자랐단다. 어머니가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한 정씨 집안으로 시집오게 되면서 그 처절한 인생역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시집오게된 동기며, 시집와 겪은 고생담은 새삼스레 가슴 아픈 전설이 되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얻은 새로운 정보는 할머니에 관한 것이었다. 어머니를 왜 그렇게 구박했던 것일까? 심지어 며느리에게 폭력을 휘두르면서 못할 짓을 다했다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손자들에게는 그렇게 인자하고 자상했던 분이 며느리에게는 왜 그렇게 악랄하게 구셨을까? 난 어머니 모르게 녹음을 하면서 의문이 들었다.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본능만이 존재하는 원시세계에서 살아오신 어머니, 이젠 자식만이 위로가 될 뿐이다. 언젠가 자서전으로 남겨 드려야 겠다는 생각이다.

해방 일 년 전 시집와서 3년만에 첫 아들을 낳고 어느 덧 70년이 흘렀다. 자식인 나와는 불과 27년 차이지만 삶의 괘적은 하늘과 땅 사이만큼 크다. 도로가 나게되면 지금 집은 없어지고 조그맣게 가계 하나 들어서는데, 살림집 들어설 공간은 없어지게 된다. 그러면 어머니는 광주에 사는 막내네 집으로 가신다. 아들들이 간곡하게 요양병원으로 모실려고 했지만 극구 반대하셨다. 요양병원에 대한 선입견이 안 좋으시다. 그래서 그곳으로 가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하신다. 설명해도 소용없다. 그냥 어머니의 의견을 수용할 수 밖에 없다. 요즘 신체적인 고통이 극심하다. 그간 절간을 찾아 여러 차례의 천도제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나아질 조짐이 없자, 어머니의 마음이 변하셨다. 형님이 다니는 교회에 나가 예수님께 하늘나라 가는 길을 맡기시겠단다. 고통없이 가는 길, 부질없음을 알면서도 아들들은 어머님 좋으실대로 하시라고 했다.

하느님이 부르셔서 가실 때까지 심신이 편안한 가운데 복락을 누리시다가 가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우리 아이들은 나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증이 자못 커간다. 나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아이들에게 비춰지고 있을까, 천덕꾸러기? 노망든 노인네? 장담하지 못한다, 우리 어머니를 넘어설 수 있을 거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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