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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깃드는 나라를 찾아서
정종량
“사실 이 배는 사람을 태울 수 없는 배요. 보시다시피 곡물 벌크선이죠. 화물선이란 말입니다. 정부의 특별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당신들을 실었지만 법적으로 당신들은 화물이죠.”(133쪽) 마치 세월호 선박의 비극을 암시하기라도 하는 듯하여, 갑자기 배에 탄 섬사람들의 운명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천신만고 끝에 화산재로 뒤덮인 무인도에 도착한 이들의 행복은 과연 이루어질까?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의 작가 한창훈은 남쪽 먼 바다에서 태어나 20여년 넘게 전업작가 생활을 해오면서 소설, 산문, 어린이책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품들을 써왔다. 이로 인해 한겨레문학상, 허균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그는 특유의 소신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어야지 꿀을 주면 안된다.” “중요한 것은 진심보다 태도이다.” “미워할 것은 끝까지 미워한다.” “땅은 원래 사람 것이 아니니 죽을 때까지 단 한 평도 소유하지 않는다.” 등(3쪽) 작가의 진솔한 삶의 철학이 이 소설의 바탕에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의 테마는 원래 남대서양의 화산섬인 트리스탄다 쿠냐섬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즉 잠시 주둔했던 영국군이 거친 환경 탓에 철수했는데 한 하사관 가족이 남아 공동체를 꾸리고 살면서 법을 만들었다. 즉 ‘누구도 특권을 누려선 안되고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간주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은 모두 5편의 연작소설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마지막 작품이 바로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이다. 이야기는 소대원들이 무인도 측량을 위해 어느 섬을 방문하게 되고 측량사가 그 곳에 남게 되는데, 점차 섬의 주민들이 늘어나자 규칙을 만든다. 그게 바로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라는 조문이다. 섬 폭발로 주민 모두가 육지로 대피하는데 육지에는 화려한 일상생활에 비해 사람들은 바쁘고 각박하게 생활하면서 욕심은 많고 몹시 지쳐있다. 따라서 대화가 부족하고 서로 들어 줄 여유가 없는 사람들 뿐이다. 이곳에 섬에서 간 소녀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이 생기며 큰 사회적인 파장을 불러 일으킨다. 또한 육지에서는 아이의 교육을 두고 학부모, 선생님과 아이 본인 간의 심각한 갈등이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주민들이 화산 폭발이 끝나고 안정되어 다시 섬으로 돌아가는데, 위급하고 험난한 폭풍우 속 항해 과정에서 선장과 항해사, 그리고 주민들간의 불통으로 인한 사태는 사뭇 심각하다.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다루면서 작가는 소통의 중요성에 초점을 맞춘다. 노인들은 끊임없이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을 찾았다. 쿠니도 처음에는 적당히 대꾸했다.”(49쪽)
‘처음에는 남의 말을 듣다보면 저절로 그렇게 되는 법이니까.’(49쪽)
‘약을 꾸준히 드시는게 좋겠어요.’(49쪽)
‘그냥 잊어버리는게 낮지않겠어요?’(49쪽)
“이와 같은 말을 꺼낸 쿠니를 노인들이 노려본다. 그 눈빛을 말로 바꾸면 ‘나도 알아!’였다.”(49쪽) 사실 주민들은 자기들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 사회와 가정의 문제, 즉 소통의 중요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청소년 문제와 노인 문제의 본질도 소통 부재에서 출발한다. 소통은 행복의 근원이기도 하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탄 사람들 아닙니까? 그런데 아직 선장님 얼굴도 못봤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선장님이나 항해사에게 갈 수 없다면 당신들의 마음도 우리게 올 수 없죠.”(125쪽) 시민의 안전도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쉬는 시간도 따로 없어요. 쉰다는게 말이 되나요! 준비를 해야지 준비하는 자만이 성공할 수 있으니까.”(147쪽) 대기업 총수들이 이렇게 한다면 아래 수 많은 부하 직원들의 여가는 어떻게 되며, 여가없는 그들과 그 가족들의 행복은 존재할까? .
따라서 작가는 삶의 여유와 행복을 고층건물의 높은 의자에 앉아서 부하직원을 거느리고 쉴새없이 지시하고 해외를 밥 먹듯 드나들면서 매년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성과를 내는 대기업 총수와 같은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농어촌, 소도시 하층민들의 삶, 토속적인 민중의 삶과 그들이 빚어내는 생활 속에서 찾고 있다. 아이들의 교육에서도 그는 어른들이 욕심을 비우고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생각해야 하며, 어린이들이 즐기고 원하는 참교육을 강조한다. 물론 이 책이 주는 메시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미 우리사회의 문제와 해법까지도 잘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작가는 우리가 잘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문제들을 다시 한번 꺼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책 곳곳에 보이는 삽화들은 우화적이고 해학적이면서도 매우 친근한 느낌을 주면서 이야기의 상상력을 더욱 배가시킨다. 우선 책의 첫장 그림을 보면 텅빈 공간에 홀로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은 외로운 현대인의 속성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 그림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다음에 전개될 이야기들을 보다 함축적으로 묘사하고 있는데, 가끔 진한 톤의 보랏빛 색상들은 신비로운 느낌마저 준다. 또한 오늘날의 어두운 시대상과 불투명한 미래의 모습까지도 암시하는 듯하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불통과 출세지향 자녀교육을 위한 부모들의 이기심, 그리고 공공관청 관료들의 권위주의적 태도에 이르기까지 작가는 독특하고 은유적인 화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정신없이 돌아가는 직장인, 아직도 자녀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는 부모들, 학생들 그리고 모든 기업체 사원들, 시민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 관료들에게 이 책을 일독해 보기를 꼭 권하고 싶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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