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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눈이라도 오려나? 하늘은 회색빛 구름을 가득 안고 있다. 옷을 단단히 차려입고 대모산을 향해 전철을 탔다. 평일에 배낭을 메고 차에 오르면 이상하게 미안하다. 남들은 열심히 일하러 또는 공부하러 가는데 나만 여유부리며 노는 것 같아 눈치 보이기 때문이다. 2호선으로 갈아탄 신도림역은 사람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배낭을 등에서 내려 조용히 들고 지하철에 올랐다. 아침 9시 반이 넘은 시간인데도, 젊은이들이 의자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거나 핸드폰 게임에 정신이 없다. 정상적인 광경인지 모르겠다. 어느덧 선릉에서 분당선을 갈아타니 금세 대모산역이다. 회장과 분당에 사는 고과장 등 세명이 길을 나섰다. 대모산입구역 7번출구를 나와 일원역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행히 아침 햇살이 빗살처럼 퍼져나간다. 하늘에 푸른 기운이 감돌며 볕도 따사롭다.
시원하게 뻗은 영동대로, 발걸음이 한층 가볍다. 길을 중심으로 좌측은 개포주공 8단지와 공무원연금매점, 그리고 9단지가 있고, 오른쪽엔 개포주공7단지와 4단지가 잇대어 나타난다. 어느 새 일원터널, 입구 우측에 대모산 등산로가 보인다. 초입 계단을 오르니 우측에 배드민턴장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아직 사람들이 없다. 베드민턴장 너머 능선으로 검은 빛이 감도는 굵은 참나무들이 열병식처럼 줄지어 서있다. 그 중에 하나는 슬프고 오래된 전설을 안고 있다. 거의 이십여년 전, 내가 이곳으로 이사와서 아침 일찍 등산을 열심히 하고 있을 무렵이다. 당시에는 초등학생이던 아이들을 깨워서 아침 운동에 동행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근방에 살던 동료 하나가 새벽 등산을 한다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한마디 한다.
“저기, 모르세요? 배드민턴장 위쪽 능선 바로 너머에 있는 참나무에 젊은 사람이 목매달아 죽은 거 말예요. 죽은 지 한 보름은 되었나봐요. 워낙 외진 곳이라 시체가 빨리 발견되지 않았데요.”
그랬다. 난 어쩌면 시체가 나무에 걸려있을 때, 새벽마다 그곳을 지났는지 모른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버거웠으면 스스로 목숨을 거두웠을까? 그 용기로 조금만 버틸 것이지. 정말 죽지못해 살아낸 사람들도 많고 많은데. 그 뒤로는 등산을 중단하고 양재천 조깅으로 선회했다. 개포동을 이사하면서 그 얘기는 머리 속에서 잊은 듯 했다. 그런데 오늘 누군가의 한이 맺힌 이곳을 지나려니 새삼스레 비슷한 참나무들에 깊은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다. 이젠 참나무들도 겨울채비를 하느라 모든 이파리를 떨어뜨리고 인고의 세월을 향한 참선 자세로 들어간지 오래다. 그래도 낙엽이 곱게 깔린 흙길은 양탄자보다도 탄력있고 부드럽다. 오르막 등산로에 줄지어 늘어선 참나무, 아카시아, 소나무 등을 헤어가며 한참 오르다 보니 갑자기 하늘이 뻥 뚤린다. 그리고 좌우로 수 많은 묘지들이 나타난다. 어느 이름 있는 가문의 개인묘지들일 것이다. 멀리 일원역 방향의 계곡으로는 한솔마을 아파트가 설악산 콘도처럼 자리 잡고 있다. 헌릉 표지판도 보이지만, 실제 헌릉은 내곡동 로타리에서 국정원 방향으로 한참을 가야 나온다. 물론 거기도 대모산 기슭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좁은 샛길을 셋이서 도란도란 얘기하며 걷다보니 금세 대모산과 구룡산 갈림길이다. 그런데 전에 못보던 조그만 정자가 앙증맞은 모습으로 반긴다. 아직 페인트칠의 신선함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다. 오가는 이들이 멈추어 서서 물 한 모금 마실 여유의 공간이다.
본격 대모산 오름길. 대부분이 옛 모습 그대로이다. 전에는 정상의 가파른 능선을 오를 땐 밧줄도 잡고 짧은 구간이나마 등산 기분이 났었는데 지금은 계단식 데크가 설치되어 너무나 편리하다. 오르고 보니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손등으로 훔치고 정상을 향하여 바삐 서두르니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앞서와 여유를 즐기고 있다. 이곳에서 밑으로 곧장 내려가면 일원역이다. 세 명의 어르신네가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도 않고 한참을 떠들다보니 주변의 많은 시선이 우리를 향한다. 293미터 높이를 거창한 설악산 등반이라도 한 양 가슴을 풀어헤치고 떠드니 흥미로운 시선을 보낸 것이려니. 정상에서 잠시 땀을 식힌 후, 되돌아 구룡산 방향으로 떨쳐나섰다.
구룡산을 향한 첫걸음은 기다랗게 이어진 내리막 계단 길로 시작된다. 주로 연인들이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내려가던 길이다. 그들에게는 이 길이 너무 짧았는지도 모른다. 끝도 없던 내리막이 끝나는 아쉬움도 잠시, 길은 다시 오르막이다. 등산로 왼쪽으로 군부대 철조망이 구룡산을 둘로 가른다. 흉물스런 모습이다. 우리가 보지 않을 때 토끼, 멧돼지, 고라니, 다람쥐들이 서로 이쪽 저쪽으로 갈리어 애를 태우지 않을까? 기우려나? 그래도 산은 우리 인간만의 차지가 아닌데 이 좁은 산에서 마저 이산가족을 만들려 하다니. 웬 계단이 이리 많지? 전에도 많았던가? 불평 아닌 불평을 입으로 중얼거리며 회장과 고과장의 뒤를 열심히 따라가려니 이마며 목에 땀이 맺힌다. 힘이 드는지 셋이 말을 멈춘 채 숨고르기에 열심이다. 한참 땀을 흘리며 허벅지 근육에 쥐가 날까 걱정할 무렵, 드디어 정상이 저만치서 손짓한다. 306미터 정상 표지판에 발을 딛자 하늘은 벌써 겨울에서 초가을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등줄기엔 땀이 흐른다. 덥게 껴입은 겉옷이 거추장스럽다. 잠시 전망대 앞에 서서 강남 일대가 모두 내 것인 양 거만스레 굽어본다. 거대한 타워펠리스가 공룡의 모습으로 눈앞에 바짝 다가온다. 재건축하는 아파트는 푸른 하늘을 가르며 올라간다. 코밑으로는 구룡마을의 끝자락이 힐끗힐끗 보인다. 한줌도 안 되는 저 아파트 안에서 누군가는 많이 가졌다 온갖 거드름을 피울 것이다. 또 어느 누구는 전세금을 올려 달라는 주인의 횡포에 가슴을 저미고 있을 것이다. 또 한편으로 어느 재주있는 투기꾼은 올라가는 재건축 아파트 꼭대기에 올라타고서 승천하는 기분을 만끽할 것이다. 그런데 난 무엇이람? 용돈 아끼라는 마누라의 잔소리를 귀에 달고 살아야 하다니.
망상도 잠시, 드디어 하산 길에 올랐다. 표지판은 구룡마을을 가리키지만 길은 낙엽에 덮여 전혀 보이질 않는다. 한참을 내려오니 제법 넓은 등산로가 나타난다. 그런데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질 일이 벌어졌다. 계곡 한켠으로 자리 잡은 조그만 야외 화장실 주변에 수 많은 산수유나무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었다. 빨갛게 익은 열매는 계절을 잊어버린 환상의 세계였다. 욕심을 부려보지만 어쩌지 못함을 아쉬워 하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곧 이어 구룡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온갖 풍상을 겪고 이제는 적막에 휩싸인 구룡마을, 그래도 투기꾼들에게는 마지막 남은 노른자위일 것이다. 여름이면 군침 돋우게 하던 많은 음식점도 가게도 모두 문을 닫았다. 이따금 곳곳에 쌓아놓은 재활용쓰레기들만이 눈에 띤다. 구룡마을의 끝은 양재대로이다. 그 맞은편에는 개포주공1단지가 자리 잡고 있다. 개포주공1단지를 안으로 끼고 도곡동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옛 생각이 새롭다. 바뀌벌레 들끓던 작고 낡은 아파트에서 대모산을 뒷동산으로 아옹다옹 살 때가 있었는데. 단지의 재건축이 본격 시작되었는지 오가는 사람이 없다. 개포중학교 교정에는 승용차들로 가득하다. 아마 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있나보다. 학교를 지나 도곡동 방향, 아니 개포고 방향으로 걷다보니 이내 시장과 식당들이 즐비한 구마을이 나타났다. 이곳까지 걸린 시간은 2시간 반. 우려와는 달리 음식점이 즐비했다. 가장 저렴해 보이는 “우리생고기” 식당으로 들어섰다. 비싼 메뉴를 이리저리 제하다 보니 통돼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가 괜찮아 보였다. 늦은 점심은 소화제, 소주 한잔은 감로주라. 식사하는 옆에서 주인아저씨, 아줌마들이 김장하느라 바쁘다. 겉절이 배추김치의 맛이 더욱 입맛을 돗운다.
다음 주 목요일을 약속하고 식당을 나섰다. 식당에서 10분 거리의 구룡역에 도착하니 그제사 행복하고 달콤한 피로감이 엄습해온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된 등산을 한 것 같다. 담주 목요일엔 날쌘돌이로 대모산과 구룡산을 주름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