썬플라워 정종량 1. 명호의 죽음 연말을 일주일 남겨둔 시점, 예년 같으면 각종 송년회 모임으로 정신없을 때이다. 금년엔 예기치 못한 강추위가 너무 일찍 한반도를 덮치는 바람에 즐거운 동창회 모임도 부담이 되었다. 아무튼 황금연휴를 앞두고 현철은 큰 용기를 냈다. 이번 연말연시에는 일본의 오사카 온천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기로 한 것이다. 마음이야 늘 품어왔지만 아이 둘을 연년생으로 대학 보낸다는 게 결코 녹녹치 않은 일이었다. 큰 애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자 이제 겨우 한숨을 돌렸다. 아직 퇴근시간까지는 십 여분이 남아있는데도 직원들은 벌써부터 책상을 정리하고 외투까지 입은 채 서서 웅성거린다. 연말이라 그런지 모두가 들떠있다. 그래도 팀장인 현철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인터넷을 검색했다. ..
흠, 눈이라도 오려나? 하늘은 회색빛 구름을 가득 안고 있다. 옷을 단단히 차려입고 대모산을 향해 전철을 탔다. 평일에 배낭을 메고 차에 오르면 이상하게 미안하다. 남들은 열심히 일하러 또는 공부하러 가는데 나만 여유부리며 노는 것 같아 눈치 보이기 때문이다. 2호선으로 갈아탄 신도림역은 사람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배낭을 등에서 내려 조용히 들고 지하철에 올랐다. 아침 9시 반이 넘은 시간인데도, 젊은이들이 의자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고 있거나 핸드폰 게임에 정신이 없다. 정상적인 광경인지 모르겠다. 어느덧 선릉에서 분당선을 갈아타니 금세 대모산역이다. 회장과 분당에 사는 고과장 등 세명이 길을 나섰다. 대모산입구역 7번출구를 나와 일원역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다행히 아침 햇살이 빗살처럼 퍼져나간다...
군시절과 경순왕 묘 지난 11월초 우리 소설쓰기반 학생들과 차 한 잔을 하며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경순왕 이야기가 나왔다. 아 그랬지, 강선 작가님이 역사소설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고 해서 나온 얘기였다. 갑자기 휴전선 근무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벌써 40년 전 일이다. 우리 아들도 제대한지가 한참 지났으니 참으로 까마득한 옛날이다. 사실 난 논산에서 전반기 훈련을 받고, 25사단에서 후반기 4주 훈련을 마친 후 자대인 파주 장파리에 배치되었다. 배치되고 한 달여 만에 철책선에 교대 투입되었는데, 그곳이 바로 임진강 건너 연천군 장단면 고랑포리다. 이곳 철책선 생활은 소대 단위로 배치되어 타 소대 막사가 멀리 떨어져 있다. 내가 있던 소대는 주변에 높은 산은 없었지만 뒤로는 임진강이 유유히 흐르고..